중3 때 페이스북에 올렸던 사진을 몇 년 만에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화면을 보는 순간 웃음이 먼저 나왔는데, 그 다음에는 "이걸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뒤따라왔습니다. 사진을 다시 보니 지금과는 옷 입는 스타일도 달랐고, 말투나 표정도 지금의 저와는 꽤 달라 보였습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올렸을 사진인데,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제가 모르는 사람의 기록처럼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 속 사람이 결국 예전의 저라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올린 사진 한 장이 지금의 저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영화 《소셜포비아》를 보고 나서 훨씬 더 구체적으로 느껴졌습니다.사이버 린치, 낯선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소셜포비아》는 실제 사회 현상을 꽤 정밀하게 ..
처음 가는 곳에서 입구 앞에 멍하니 서 있었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처음 혼자 수영장에 갔던 날이 딱 그랬습니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을 보면서 내내 그날 생각이 났습니다. 배 나온 중년 남자들이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수중발레)에 뛰어드는 이야기인데, 웃음의 농도보다 그 안에 담긴 '처음'의 감각이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낯섦 —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작아지는 순간흔히 코미디 영화라고 하면 상황이나 대사에서 바로 웃음이 나오는 경우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제게 이 영화는 조금 달랐습니다. 상영관에서 다른 관객들이 꽤 즐겁게 웃는 소리가 들렸고,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그 웃음보다 인물들이 처음 물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더 눈이 멎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
처음 혼자 주민센터에 서류를 떼러 갔던 날, 저는 번호표 기계 앞에서 한참을 멈췄습니다. 어른이 되면 이런 일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앞에 서니 어디를 눌러야 할지조차 몰라서 다른 사람 손을 힐끔 쳐다봤습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면 금방 해결될 일이었지만, 괜히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를 보면서 그날의 민망함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정작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제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물론 영화 속 아이들이 겪는 상황과 제 경험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릅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모르는 ..
솔직히 저는 꽤 오랫동안 "안 살게."라는 말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갖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분위기에 뒤처지기 싫어서 샀던 물건들이 통장 잔고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영화 《최선의 삶》을 보면서 그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어떻게 사람의 선택을 흔드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남긴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분위기에 휩쓸린 소비, 그 씁쓸한 기억친구들과 쇼핑을 갔던 날이 있었습니다. 저는 애초에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한 친구가 옷을 집어 들더니 "이 정도면 괜찮지?" 하고는 바로 계산대로 향했습니다. 다른 친구도 따라 샀고, 어느새 저만 빈손이었습니다.그달은 월말이라 통장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며칠만 버티면 월급이 들어올 상황이었는데, 결..
월급날 통장에 들어온 돈이 월말에는 절반도 남지 않는 경험, 저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예전에는 돈이 부족해서 저축을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면 '이번 달에는 이것도 사고 저것도 해야지' 하면서 먼저 쓰고, 남은 돈이 있으면 그때 저축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 남은 돈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경제적으로 빠듯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담은 작품입니다. 큰 사건보다 생활비와 관계, 그리고 버티는 과정에 집중하는 영화입니다. 특히 사채까지 쓴 건 아니라는 아내의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서늘하게 들렸습니다. 특별히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처럼 느껴졌기..
영화 비긴 어게인은 이별과 음악,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따뜻하게 그려낸 음악 드라마입니다. 이별 뒤 가장 힘든 건 헤어지는 순간보다 그다음 날부터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런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퇴근길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냈다가 더 이상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던 순간처럼요. 처음에는 음악 영화라길래 가볍게 보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노래보다도 다시 시작할 용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가 선택한 배경, 뉴욕이라는 공간'비긴 어게인'은 뉴욕의 한 바에서 시작됩니다. 무대 위에서 혼자 기타를 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레타를 한 남자가 주목하면서 이야기가 열립니다. 그 남자는 댄, 한때 잘 나가던 음악 프로듀서였지만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