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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처음 중고거래를 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거래 장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온갖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거래는 3분 만에 끝났습니다. 그날 알았습니다. 두려웠던 건 현실이 아니라 시작하기 전의 상상이었습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면서 그날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인물분석 — 찬실은 왜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가
영화의 주인공 찬실은 살리라 감독 지명수의 현장 프로듀서입니다. 찬실은 오랫동안 영화 현장에서 프로듀서로 일해 온 사람입니다. 그 감독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찬실은 영화사 대표에게 해고를 통보받습니다. 일도, 돈도,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 자체를 한 번에 잃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서사라면 주인공이 눈물로 침대를 적시거나, 분노해서 뭔가를 부수거나, 아니면 술에 절어 자기연민에 빠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찬실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홍제동 개미마을로 이사합니다. 짐을 옮기고, 가사도우미 일을 구하고, 밥을 먹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오히려 이게 더 현실적인 슬픔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상실 앞에서 실제로 사람이 하는 건 대부분 이렇습니다. 그냥 그다음 날도 일어나는 것.
인생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면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무너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다음 할 일을 찾습니다. 찬실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감독이 없어진 뒤에도 자신의 프로듀서 경력을 내색조차 못 하고, 메이크업 스태프들이 찾아오면 가사도우미 일을 숨기는 장면에서 찬실의 자존심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드러납니다. 이 긴장감이 이 영화 인물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찬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불안과 자존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 다가옵니다.
감독을 잃은 뒤 찬실은 일터뿐 아니라 삶의 기반까지 함께 잃습니다. 홍제동으로 이사해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하지만, 영화계 사람들 앞에서는 그 사실을 숨깁니다. 그 모습에서 자존심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상실과 회복 — 장국영 귀신이 필요했던 이유
영화의 가장 독특한 장치 중 하나는 아비정전(1990, 왕가위 감독)의 배우 장국영이 귀신으로 등장한다는 설정입니다. 아비정전은 홍콩 뉴웨이브 시네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사랑과 방랑, 뿌리 없는 존재의 불안을 담은 영화입니다. 저는 장국영이 왜 갑자기 등장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것이 찬실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치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장국영 귀신은 찬실에게 나타나 위로를 건네는데, 그 위로의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다 잘 될 거야"라는 말 대신, "스스로 원하는 걸 찾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찬실이 듣고 싶었던 말과 들어야 하는 말 사이 어딘가에 있는 조언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귀신 설정이 그냥 영화적 유머 장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이게 찬실의 내면 목소리를 외화한 구조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찬실과 불어 과외 선생님 영신이 함께 술을 마시며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영신은 자신도 단편영화감독이라고 밝히고, 찬실은 자신의 프로듀서 경력을 숨깁니다. 이 대화 구조에서 두 사람은 영화라는 공통 언어로 연결되지만 서로에게 완전히 솔직하지는 않습니다. 그 어긋남이 이후 찬실이 영신에게 상처받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영신이 찬실을 "좋은 누나"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순간, 찬실은 그 자리를 떠납니다. 말 한마디로 관계의 성격이 규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찬실이 느꼈을 감각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관계를 순식간에 규정해 버리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는 것 같습니다. 기대가 구체화되지 않은 채로 있다가 단번에 정의되어 버리는 그 순간의 당혹감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상처는 크게 울지도 못해서 더 오래 남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창작의 의미 —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
영화 중반부에 찬실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1988)을 듣게 됩니다. 집시의 시간은 유고슬라비아 출신 감독 에밀 쿠스투리차의 작품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찬실은 젊었을 적 이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영화에 대한 열정을 느꼈다고 회상합니다. 그 기억은 지금의 찬실에게 단순한 향수가 아닙니다. 영화를 향한 열정이 삶을 통째로 지배했던 시절을 되짚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명확해집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찬실은 자신이 영화를 사랑해서 이 일을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일이 사라졌을 때 남는 건 영화만이 아니었습니다. 일, 사랑, 돈,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회의감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흥미로운 건 찬실이 이 회의감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합니다. 시나리오(Scenario)란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을 위한 문학적 설계도입니다. 단순한 이야기 줄거리가 아니라, 장면의 순서와 대사, 인물의 감정선까지 포함한 총체적인 구조물입니다. 프로듀서였던 찬실이 자신의 삶을 창작의 재료로 삼는다는 설정은 단순한 반전이 아닙니다. 남의 영화를 현실로 만들던 사람이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 이 변화가 영화가 말하려는 '회복'의 방향입니다.
저도 처음 중고거래 하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거래를 약속해 놓고도 전날부터 괜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혹시 약속 장소에 안 나오면 어떡하지?', '괜히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별일 아닌 일인데도 머릿속에는 최악의 상황만 계속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약속 당일에는 예정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상대방이 다가와 물건을 한 번 확인하고, 계좌이체를 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주고받기까지 시간이 허무할 정도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거래가 무서웠던 게 아니라 시작하기 전의 상상을 무서워하고 있었구나'였습니다. 그 후로는 중고거래 자체가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처음 한 번이 어려웠을 뿐,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찬실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기 시작하는 장면도 저에게는 비슷하게 다가왔습니다. 모든 두려움이 사라져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불안했지만 일단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완벽한 자신감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시작해 보는 용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한계와 매력 — 상징이 많아 불편한 영화가 더 오래 남는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저예산 독립영화(Independent Film)입니다. 저는 평소에도 독립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화려한 연출이 없어서 오히려 찬실의 감정에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몇몇 장면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장국영 귀신이 등장하는 방식이나, 집시의 시간을 통해 찬실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구조 같은 것들이요. 저는 원래 영화를 보고 해석을 찾아보는 편이 아닌데, 이 영화는 이상하게 며칠 동안 계속 생각나 결국 다시 찾아보게 됐습니다. 이런 작품을 영화 비평 용어로 아트하우스(Arthouse) 영화라고 부릅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이 지점을 단점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보다, 뭔가 아리송한 채로 남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결국 더 오래 남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그랬습니다. 큰 감동은 아니었지만 보고 난 뒤에도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따뜻했고,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찬실이 홀로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이 정도면 이 영화가 할 일을 다 한 겁니다.
참고로 이 영화는 출처: 영화진흥위원회(KOBIS) 자료 기준 2019년 개봉 당시 독립영화 흥행 상위권에 오른 작품으로, 적은 스크린 수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으로 오랫동안 상영됐습니다.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닌데도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은 경우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인물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찬실이 더 현실적인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면 장국영이 등장하는 상징적인 연출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조금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찬실이는 복도 많지, 어떤 사람한테 맞는 영화인가요?
A. 인생의 방향이 갑자기 틀어진 경험이 있는 분, 또는 좋아하는 일을 해왔는데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감각을 느끼는 분에게 잘 맞는 영화입니다. 화려한 볼거리나 빠른 전개를 기대하면 지루할 수 있지만, 조용히 일상을 따라가는 감각을 즐긴다면 의외로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Q. 장국영이 왜 나오는 거예요? 아비정전을 미리 봐야 하나요?
A. 아비정전을 미리 보면 장국영 귀신의 등장이 더 풍부하게 읽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안에서 장국영 귀신은 찬실의 내면 목소리를 외화한 존재로 기능하기 때문에, 그 맥락만 이해해도 장면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보고 나서 아비정전을 찾아보는 순서도 괜찮습니다.
Q. 독립영화라서 화질이나 완성도가 낮지 않나요?
A. 저예산 독립영화이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전혀 어색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카메라가 인물의 표정과 일상 공간을 밀착해서 따라가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강점입니다. 제작 규모가 작을수록 인물 한 명에 집중하는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저예산이라는 조건을 단점이 아닌 미학으로 전환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영화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A. 전형적인 해피엔딩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찬실은 일도, 사랑도, 돈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납니다. 다만 소피와 함께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로 다짐하고,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합니다. 해결이 아닌 시작으로 끝나는 구조입니다. 그 열린 결말이 이 영화가 주는 여운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삶이 무너진 뒤 어떻게 다시 시작하는가를 묻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답이 "열심히 하면 된다"거나 "결국엔 다 잘 된다"는 식이 아닙니다. 영화는 찬실이 조용히 하루를 버텨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인생은 거창한 결심 한 번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 별것 아닌 하루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 이 영화는 그 어떤 대사보다 조용하게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보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저 역시 처음 중고거래를 하고 나서야 '겁을 먹게 만드는 건 현실보다 상상인 경우가 많다'는 걸 조금 알게 됐습니다. 찬실도 완전히 두려움을 없앤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용기를 가져라'가 아니라 '두려워도 한 걸음은 내디딜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에 보면 그냥 무난한 독립영화로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시기에 보면 찬실의 조용한 일상이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 영화는 조용히 곁에 앉아 "괜찮아, 그렇게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중고거래를 떠올렸습니다. 그때는 별것 아닌 일이 왜 그렇게 두려웠는지 지금도 신기합니다. 어쩌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사람은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찬실의 마지막 선택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거창하게 인생이 바뀐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은 채 다음 페이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