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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같은 반에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몇 달 동안 그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무서웠던 것도, 싫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낯설다는 이유 하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같은 교실에서 매일 얼굴을 보고 수업도 함께 들었는데도, 괜히 다가가기가 어렵게 느껴졌던 제 모습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 용기를 내어 말을 걸고 함께 놀게 되면서 그 친구도 저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친구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영화 《완득이》를 보는 내내 그 기억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는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2011년 개봉한 영화지만, 지금 다시 봐도 우리가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다문화 가정,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해진다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다문화 가정 학생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학생 수는 2023년 기준 약 18만 1천 명을 넘어섰고, 전체 학생 수는 감소하는 반면 다문화 학생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숫자만 보면 다문화 사회는 이미 우리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식도 그만큼 달라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 같은 반에 있던 아프리카 출신 친구도 자연스럽게 무리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도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먼저 다가가는 친구도 많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싫어서가 아니라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몇 달 동안 먼저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영화 속 완득이 역시 비슷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베트남 출신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주변 인물들 또한 이주노동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로 구성되어 있어, 영화는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보다 우리 사회가 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함께 보여줍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완득이보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갔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국적이나 피부색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거리였습니다. 저도 그 친구와 막상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왜 그렇게 망설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람을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서로의 차이가 아니라,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우리의 시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수자 연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처음 말을 걸기 전까지는 그 친구가 쉬는 시에 뭘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대부분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고, 저 역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입니다. 같은 교실에서 매일 얼굴을 보는데도 서로를 모르는
사람처럼 지냈으니까요.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같이 가보자고 했고, 그제야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습니다. 생각보다 대화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괜히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이 놀래?"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한마디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셋이서 학교 앞 슈퍼에서 피카추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운동장에서 철봉을 타며 놀았습니다. 처음 한 걸음이 가장 어려웠을 뿐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주는 완득이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대신 옆에서 계속 말을 걸고, 관심을 보이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완득이가 조금씩 마음을 여는 과정도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말입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복잡하고 냉정합니다. 다문화 가정이나 이주민이 겪는 문제들이 영화처럼 따뜻하게 해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다문화 가정과 소수자의 현실을 처음으로 보여준 상업 영화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 차별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솔직히 저도 스스로를 차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왜 그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했을까. 돌이켜보면 그 친구가 저에게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괜히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피부색이 달랐고, 말투가 조금 달랐고, 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 역시 편견의 한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도 완득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베트남 출신 어머니를 부끄러워하고 현실을 외면하지만,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가족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영화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더 큰 상처를 만든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실제 교육부의 다문화교육 정책에서도 다문화 학생들이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로 편견과 사회적 소외를 꼽고 있으며, 학교 현장에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친구와 친해진 뒤에는 피부색이나 국적이 친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결국 차별은 거창한 혐오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먼저 선을 긋는 작은 거리감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결론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완득이의 성장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던 그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먼저 다가가지 못했고, 결국 용기를 낸 뒤에야 그 친구도 저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완득이>는 다문화 가정이나 이주노동자,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묻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차별은 거창한 혐오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거리를 두는 작은 무관심에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완득이>는 단순한 성장 영화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말을 걸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초등학교 시절 그 친구가 떠오릅니다. 그 기억 덕분에 이제는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완득이>는 저에게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다시 가르쳐 준 영화로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