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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부림 사건, 침묵의 공범, 국가보안법)

by creator25754 2026. 6. 14.

변호인

 

1981년 전두환 군부 정권이 조작한 부림사건은, 단순히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잡아다 고문했던 실화다. 영화 《변호인》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법정 장면도, 송강호의 명대사도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때 교실 뒤편에서 혼자 울고 있던 친구 얼굴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모른 척 지나갔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하게 그 친구 얼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책 한 권이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던 시대

1981년 부산에서 독서 모임에 참여하던 청년 22명이 불법 단체 활동 혐의로 연행됐습니다. 이것이 부림사건입니다. 당시 안전기획부(안기부)는 이들이 읽던 책들을 이적 표현물로 규정하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적 표현물이란 국가보안법상 북한이나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이롭게 한다고 판단되는 문서나 도서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그 '불온서적' 목록이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전환시대의 논리》. 지금은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권하는 책들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영화가 조금 과장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제 사건 기록을 찾아보고 나니 오히려 영화가 담지 못한 부분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가 수사의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무서웠던 건 그런 분위기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부림사건은 2014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출처: 법원행정처). 사건 발생 33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33년이라는 숫자를 머릿속에 놓고 영화를 다시 보면 송우석이 법정에서 소리치는 장면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그 친구를 외면했던 기억

영화를 보면서 저는 계속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중학교 때 반에 조용한 친구가 있었고, 몇몇 아이들이 그 친구를 꾸준히 괴롭혔습니다. 체육 시간에 공을 일부러 세게 던지거나, 급식 줄에서 밀치는 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뒤 혼자 교실에 남아 울고 있는 그 친구를 봤지만, 저는 그냥 나왔습니다. 사실 말을 걸까 고민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괜히 어색해질 것 같았고, 저까지 놀림받을까 봐 그냥 교실을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몇 초의 망설임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 속 송우석도 처음부터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동산 등기, 세금 소송으로 돈 잘 버는 변호사였습니다. 그가 변한 건 국밥집 아주머니의 아들 박진우가 고문당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하면서부터입니다. 외면하지 못하게 된 순간이 그를 바꿨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악역들이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안에 저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악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구조가 더 무서울 수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요.

영화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잡았던 장면은 법정 명대사가 아니었습니다. 고문 피해자들이 증언석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외면했을지를 생각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법정 밖의 침묵이 법정 안의 정의를 얼마나 어렵게 만드는지, 그게 더 오래 남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저도 "누군가는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정말 과거의 이야기일까 

그래서 저는 송우석이 조금 더 흔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저는 그렇게 용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도,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도 쉽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영웅보다 망설이는 사람의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련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놀라웠던 건 영화가 완전히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불온서적으로 분류됐던 책들 중 상당수는 지금 교양서로 읽히고 있습니다. 같은 책인데 시대에 따라 평가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영화에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송우석이 조금은 현실에서 멀어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물론 영화니까 가능한 모습이었겠지만, 실제 사람은 그렇게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니까요. 오히려 저는 두려워하면서도 한 걸음 내딛는 사람, 끝까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결국 행동하는 사람이 더 현실적이라고 느낍니다. 

그럼에도 《변호인》이 좋은 영화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영화는 민주화 운동을 다룬 역사 영화이면서도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송우석이 외쳤던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장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칙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묻는 것, 그것이 영화가 남긴 진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인》을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건 결국 제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부림사건의 피해자들보다 먼저 떠오른 건 중학교 시절 울고 있던 친구를 외면했던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괜히 나섰다가 저까지 이상하게 보일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를 괴롭힌 아이들보다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제 자신이 더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국가 권력이 개인을 짓밟았던 역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제가 외면했던 작은 순간들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변호인》이 던지는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일을 봤을 때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한마디를 할 것인가.

솔직히 저는 아직도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용감하지 않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중학교 때 울고 있던 친구를 보면서도 모른 척 지나갔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가장 오래 남은 건 법정 장면이 아니라 그 친구의 얼굴이었습니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번에는 적어도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는 건넸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변호인》이 좋은 영화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부림사건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일을 봤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래서 《변호인》은 저에게 단순한 법정 영화가 아닙니다. 부림사건이라는 역사를 알게 해준 영화이면서, 동시에 제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돌아보게 만든 영화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youtu.be/OekugpEQSxI?si=x7hkoIAUgFzsFbj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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