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군함도 (일본의 강제 징용, 유네스코 논란, 역사 인식)

by creator25754 2026. 6. 8.

군함도

 

 

저는 한동안 군함도를 그저 역사 속 지명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그리고 증조할머님이 그 시대를 겪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강제징용, 그 섬이 '지옥섬'이 된 이유

하시마 섬, 흔히 군함도라고 불리는 이 섬은 원래 작은 탄광 섬이었습니다. 이후 미쓰비시가 개발하면서 대규모 해저 탄광도시로 변하게 됩니다. 일본의 전쟁 확대와 함께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인 동원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작은 섬 하나에 수천 명이 몰려 살면서 당시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높은 인구밀도를 기록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6.3헥타르가 얼마나 좁은 땅인지 감이 잘 안 왔는데, 그 안에 5천 명이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느낌으로 바로 왔습니다. 숨이 막히는 공간에서 탈출도 못 하고 일만 해야 하는 삶, 탈출을 시도하면 바다에 빠져 죽거나 일본 순사에게 살해당했다는 기록은 단순한 노동 착취를 넘어선 감금이자 폭력이었습니다.

해저 700미터 깊이의 갱도에서 이뤄진 강제 노역도 문제였습니다. 갱도(坑道)란 지하 탄광에서 석탄을 캐기 위해 뚫어놓은 지하 통로를 말합니다. 그 안은 40도를 넘는 고온에 석탄 분진이 가득했고, 조선인 노동자들은 주먹밥 하나로 하루를 버텼습니다. 반면 일본인 광부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환경에서 일했으며, 섬 안에는 이들을 위한 레스토랑과 유흥시설까지 갖춰져 있었습니다.

검은 연기가 끊이지 않았던 섬, 죽음의 기록

잦은 강제 노역과 영양실조, 사고로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시체를 매장할 땅조차 부족해졌습니다. 결국 시신은 한국으로 보내지지 않고 섬 안에서 모두 화장(火葬)되었고, 그로 인해 섬에서는 검은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에 보관된 사망자 명단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이름과 나이, 사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목록에는 산모와 생후 18개월에 불과한 신생아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매몰 사고와 영양실조가 주요 사망 원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8개월짜리 아이가 영양실조로 숨졌다는 사실 앞에서는 분노가 말로 표현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 증조할머님도 그 시절을 몸으로 겪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작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언제든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누군가의 기억도 결국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2024년 기준으로 6명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1974년 폐광과 함께 무인도가 된 이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그분들의 몸에 새겨진 기억은 폐광보다 먼저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 뭐가 문제인가

2015년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23개 시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유네스코(UNESCO,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가 인류 공통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고 인정한 문화·자연 유산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전 세계가 함께 보존하고 기억해야 할 장소로 공인하는 제도입니다.

문제는 등재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강제 노역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입니다. 일본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동원 사실을 설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군함도와 관련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핵심 사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강제징용이 본격화된 시기는 1916년 이후이나, 일본은 신청 기간을 1915년까지로 한정해 이 역사를 배제했습니다.
  • 등재된 23개 시설 중 강제징용 피해가 발생한 곳은 7곳이지만, 관련 기록은 최소화되었습니다.
  •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분담금을 활용해 한국과 중국의 피해 기록물 등재 시도를 방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21년 일본에 강제 노동 피해자를 기리는 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채택했습니다(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국제 사회도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의 역사 인식,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

독일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은 1985년 연설에서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눈을 감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일은 전쟁 피해자들에게 직접 찾아가 사죄했고, 젊은 세대가 그 반성을 이어받아 과거사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냈습니다. 일본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저는 일본 문화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끌고 가서 탄광 먼지 속에 가두고, 어린아이까지 노역에 동원하고, 여성들을 유흥의 도구로 삼고 나서도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태도는 지금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기억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군함도를 단순한 산업 문화유산이 아닌 강제 노동의 기억이 새겨진 전쟁 유산(War Heritage)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쟁 유산이란 전쟁이나 식민 지배로 인한 인권 침해의 흔적을 담은 장소 또는 시설물을 의미합니다. 이를 산업 발전의 증거로만 기억하는 것은 피해자들의 존재를 지우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 관련 통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는 78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습니다(출처: 행정안전부). 이 숫자 뒤에는 각자의 삶이 있었고, 저희 증조할머님처럼 이름 없이 그 시절을 버텨낸 분들이 있었습니다.

"망각은 유랑을 연장시키고, 구원의 비밀은 기억이다"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군함도》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제 머릿속에는 군함도가 아니라 증조할머님의 얼굴이 남았습니다. 결국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거대한 사건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을 잊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https://youtu.be/vm4 fbuHy2 uA? si=gt4 iecMLWuvWyges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