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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 다시 보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by creator25754 2026. 6. 14.

과속스캔들

 

8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코미디라는 껍데기만으로 그 숫자를 채울 수 있을까요. 처음 《과속스캔들》을 봤을 때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주말 저녁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됐는데, 그때는 영화보다 왕석현 나오는 장면만 보고 계속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몇 년 뒤 다시 보니 왕석현의 웃긴 장면보다 남현수와 정남이 어색하게 마주 앉아 있던 장면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36세 남자에게 22세 딸과 6세 손자가 갑자기 나타나는 이야기, 웃음 뒤에 꽤 무거운 질문이 숨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가족,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일반적으로 가족 영화는 따뜻한 메시지를 위해 갈등을 너무 빨리 봉합한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과속스캔들》이 그 공식을 어느 정도 비껴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전반부는 그랬습니다.

라디오 DJ 남현수가 처음 정남을 만났을 때 보이는 반응은 현실적입니다. 숨기고, 부정하고, 내쫓으려 합니다. 솔직히 저라도 갑자기 딸과 손자가 찾아왔다면 문부터 닫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너무 황당해서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거든요. 사실 현수가 DNA 검사까지 받으려는 모습이 조금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저라도 하루아침에 딸과 손자가 나타났다고 하면 쉽게 믿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미 외모에서 닮음이 확연히 드러나는데도 현수가 감정을 의뢰한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답답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믿기 싫은 현실이 눈앞에 나타나면 사람은 확인부터 하고 싶어 지니까요.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가족이라는 게 꼭 혈연으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대학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1년 넘게 같이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왜 늘 같은 말을 했을까

제가 이 부분에서 가장 공감한 장면은 정남이 현수에게 "돈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갖고 싶었다"라고 고백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대학생 때는 부모님 전화가 오면 귀찮을 때가 많았습니다. 친구들이랑 밥 먹고 있는데 전화가 오면 일부러 벨소리만 보고 넘긴 적도 있었습니다.  가끔은 "이따 전화해야지" 하고 넘겼다가 결국 하루가 지나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참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밥 먹었냐", "늦게 다니지 마라" 같은 말이 그땐 잔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전화를 끊고 나서 "또 같은 말이네" 하고 투덜거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살기 시작하고 나니 그런 전화가 오히려 기다려질 때도 있었습니다. 정남이 원한 건 아버지라는 역할, 그 자체였던 거죠.

처음에는 서로 밀어내지만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가족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스캔들 때문에 다시 멀어졌다가 결국 서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웃음 뒤에 남은 아쉬움과 질문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남현수가 변하는 속도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가족을 밀어내던 사람이 생각보다 마음을 빨리 열더라고요. 실제로 저라면 그렇게 쉽게 마음을 바꾸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갑자기 딸과 손자가 생긴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니까요. 저 역시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갖게 된 건 대학교에 들어간 직후가 아니라, 몇 년에 걸쳐 조금씩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현수가 끝까지 좀 더 갈등하고 망설이는 장면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만 정남이 혼자 아이를 키우며 겪었을 현실은 영화에서 조금 가볍게 지나간 것 같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웃으며 봤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스물두 살에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상상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남현수보다 정남에게 더 마음이 갔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 마음보다 자식 마음이 먼저 보이기 마련인데, 그래서인지 정남의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니 정남이 생각보다 외로운 인물이라는 게 보였습니다. 아버지를 찾아갈 만큼 용감했지만, 정작 힘들 때 기대서 울 사람은 없어 보였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해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정남과 현수가 직접 대화보다 라디오라는 간접 채널을 통해 화해하는 구조가 단순한 연출 선택이 아니라, 실제 부모 자식 간의 의사소통 패턴을 반영한 것처럼 읽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과속스캔들》은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갈등이 다소 빠르게 해결되고, 미혼모의 현실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제가 먼저 부모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밥 먹었어요"라고 시작한 통화였는데, 생각보다 오래 통화했습니다. 별 이야기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날씨 이야기, 건강 이야기, 반찬 이야기 같은 평범한 

이야기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1~2분 만에 끊었을 전화였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먼저 끊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영화 한 편이 사람을 크게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날만큼은 부모님 생각을 더 하게 만들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통화 기록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별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부모님 목소리가 이상하게 오래 귀에 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왕석현의 웃긴 장면보다 부모님과 했던 그 통화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영화 내용보다도 그날 부모님과 통화한 시간이 더 오래 기억났습니다.


참고: https://youtu.be/Vvv5 C49 uUYc? si=9 zETw1_9 ymAhOZ2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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